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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0일 수요일

엘로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라(호 6:3)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요 17:3)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한 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있을 뿐, 두 분 즉 엘로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히브리 원어에 하나님에 상응하는 용어는 크게 두 가지가 쓰이고 있는데 그 하나가 '엘로아흐'이고 다른 하나는 '엘로힘'입니다. '엘로아흐'는 '엘'과 같은 단수개념으로 쓰였고, '엘로힘'은 복수개념으로 구약원어 성경에서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엘로힘이란 '하나님들'이라는 뜻으로 단수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둘 이상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 창세기에 등장한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남자형상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여자형상의 하나님이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창 1장 26~2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시니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 남성적인 형상과 여성적인 형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도, '우리'라는 말은 분명 단수가 아닌 복수 개념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함께 세상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의 내용을 통해서도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11장 1~7절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에 나타나셔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시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이곳에서도 함께 역사하심으로 인간의 오만함을 꺾으시고 바벨탑의 역사를 중단시키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 우리가 내려가서 …"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 이사야서에 등장한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알려주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이사야 서에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갈 사람을 찾고 계실 때, 하나님께서는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또한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께서 더불어 함께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에 등장한 하나님

예레미야 서에서도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렘 31장 22절 "…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새 일을 창조하시겠다고 하시고, 여자가 남자를 안는 일이 새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자(하와)는 원래 남자의 갈빗대로 남자의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드시지 않으셨다면 어찌 남자의 안에 있던 여자가 남자를 안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겠다고 하신 새 일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 속에 내재하심으로 그간 드러나지 않던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전대 미문의 일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 일'은 새 언약을 세우심으로 세상에 창조됩니다.

렘 31장 31~34절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언약을 세우리라 …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라는 부분에서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새 언약을 통해 우리가 엘로힘의 하나님을 깨닫게 될 때,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더 이상 "너는 하나님을 알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볼 때 새 언약 진리 안에는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곧 엘로힘의 하나님께서 계셔야만 우리가 비로소 새 언약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하고 있기에 성경에 기록된 새 언약의 자녀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 '기약이 이르면 나타나겠다' 예언하신 하나님

영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 사역하시는 하나님께서 기약이 이르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딤전 6장 15절)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시는지 계시록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늘 '우리'라는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시고 표현하신 그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실 때에는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고 계십니다. 성령과 신부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 것은,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바로 그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015년 9월 29일 화요일

콜롬버스의 달걀과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에 공감하는 글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페인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여왕은 그를 위해 환영만찬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는 콜롬버스의 명성을 시기하는 자도 있었다. 그는 콜롬버스의 성과를 깎아내리며 말했다.

“당신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 해도 다른 누군가가 당신과 같은 시도를 하였을 것이오. 우리나라에는 세계 지리와 문학 방면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으니 말이오.”

콜롬버스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달걀 하나를 갖고 오게 한 후 말했다.

“여러분 중에서 누구라도 좋으니 이 달걀을 세워 보시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달걀 세우기를 시도해봤지만 아무도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콜롬버스가 달걀의 한쪽 끝을 탁자에 쳐서 깨뜨린 후 달걀을 세웠다.
이번에도 콜롬버스를 시기하는 자는 “그렇게 쉬운 걸 누가 못하느냐”며 비웃었다. 그러자 콜롬버스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내가 세우기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까?”

필자는 이 일화를 들으며 새언약 유월절을 세우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떠올렸다. 새언약 유월절이란 2천 년 전 초림 예수님께서 지키면 죄 사함과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신 귀중한 절기다.


마 26:19, 26~28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한다. 이 약속을 믿고 따른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유월절은 오직 죄 사함을 주실 수 있는 분, 하나님만이 세워주실 수 있다.

사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이처럼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절기요 죄 사함의 방법이다. 따라서 유월절이 사라진 이 시대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두 번째 오셔야 하는 것이다(히 9:28). 이 예언을 따라 오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다. 재림 그리스도이시다.
이렇게 안상홍님께서 재림 그리스도이신 이유를 설명하면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안상홍님이 재림 예수님인 이유(증표)가 단지 유월절 때문이냐? 그렇다면 어느 누구라도 유월절만 가져오면 재림그리스도냐?”라고 말이다.

이런 질문은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유월절을 그까짓 것으로 치부해, 안상홍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의교회에서 전하는 진리를 비하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묻겠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이 사람에 의해 폐지된 이후 160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왜’ 유월절을 찾아내지 못했는가. 수많은 신학박사들과 성경연구가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유월절과 같은 천국의 비밀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천 년 전 초림 예수님만이 새언약 유월절을 알려주실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새언약 유월절은 오직 재림 예수님만이 세워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이 새언약 유월절 진리를 세워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그래서 안상홍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두 번째 오신 재림 그리스도인 것이다.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 새언약 유월절을 찾아주신, 안상홍님께서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내가 새언약 유월절을 세우기까지 왜 아무도 하지 못했는가?”

-패스티브닷컴에서-
 

 

2015년 9월 28일 월요일

가을 황금 들녁~

추석날 동네 한바퀴 돌다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보았습니다~

남서풍에 향기가 실려오고, 귀뚜라미 울음이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밤하늘의 별자리가 바뀌는 이맘때는 
늘 아름다웠다. 

어떤 맑은 날, 편지함 옆의 흰 자작나무 위로 
흰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광경은 숨 막힐 만치 아름답다.

- 타샤 튜더의《행복한 사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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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이맘때는 늘 아름다운거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시간이라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면 흰 자작나무 위의 기러기떼도,
파랗게 물들어 가는  하늘 캔버스도 알 수 없습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세요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삶이,바로 우리 앞에 있답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계명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진리란 길가의 조약돌 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진리를 왜 사람들은 터득하지 못할까요?"

스승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조약돌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낮추지 않기 때문이지."



하나님의 진리도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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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패스티브 닷컴 내용 발췌

(알고 있다는 착각)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영역을 벗어나 자신의 사고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느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하는데,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0.1%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국모의고사에서 전국석차 0.1% 안에 있는 800명의 학생들과 평범한 700명의 학생을 비교해 두 그룹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탐색해보는 내용으로, 연관성 없는 25개의 단어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를 통해 메타인지력을 설명했다.

실험에서는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단어를 기억하기 전 자신이 몇 개의 단어를 기억할 수 있는지 먼저 예상토록 했다. 두 그룹의 결과는 흥미로웠다. 상위 0.1%의 학생들은 자신이 몇 개를 기억할 수 있는지 예상한 것과 실지로 자신이 기억한 결과가 서로 일치했지만 평범한 그룹의 학생들은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예상과 실지로 기억해낸 결과의 차이가 훨씬 컸다. 이것이 메타인지력의 차이다.

상위 0.1% 그룹에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타인지력이 낮은 사람은 자신이 다 알지 못하면서도 무엇인가 다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있다. 이렇게 메타인지에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친근감’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족이 여행을 가다가 갑자기 자동차의 고장으로 대로변에 섰다고 하자. 남자는 무작정 자동차 앞으로 가서 보닛을 열어 들여다본다. 사실 보닛을 열어본다고 해서 남자는 무엇이 고장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항상 차와 친근하게 지내왔기에 남자는 고장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친근감’은 메타인지의 혼란을 초래하고 메타인지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적 메타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은 안식일, 유월절 등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전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다 알고 있다’며 ‘성경을 덮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저들은 그저 오랜 세월 일요일에 예배를 보아왔고, 십자가를 숭배해왔고,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기념해왔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성경에는 없는, 사람이 만든 것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영적 메타인지가 낮아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을 늘 접하고 있다는 친근감 때문에 영적 메타인지의 혼란이 왔고 결국 자신들의 알고 모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린도전서 8:2)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행전 17:11)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면 결코 구원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야 구원의 길이 어디인지 알게 될 것이다

2015년 9월 26일 토요일

하나님과의 표징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마디다. 천지창조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안식일은 편안할 안(安), 쉴 식(息), 날 일(日)로 ‘편안히 쉬는 날’을 뜻합니다. 그 유래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이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위대한 창조주의 기념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성일(聖日)로 구별하셔서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모세 때에 내려와서는 하나님의 법을 성문화하시며 십계명을 반포하셨는데, 네 번째 계명이 바로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시며 그 이유를 이렇게 부연하셨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11)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공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그날을 성일로 삼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31:14~17)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에스겔 20:19~20)

믿음의 근간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셈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안식일을 지킵니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9월 25일 금요일

희생과 사랑이 담긴 하나님의 약속, 새언약 유월절

1912년 세계에서 가장 큰 초호화 여객선이 있었다. 길이는 269m, 높이는 20층으로 당대의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하여 만든 타이타닉호가 그 주인공이다.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라 하며 일명 ‘불침선’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나 1912년 4월 14일, 2,200명의 승선자 중 1,500여 명과 함께 북대서양의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1997년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돼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당시 타이타닉에 승선했던 사람들 중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고 맺어진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아름답지만, 사고 당시 먼저 구명보트에 탑승하려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승객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탈출을 포기한 채 처연하고도 의연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선상 악단들의 모습 또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월레스 헨리 하틀리. 당시 선상 악단의 리더였던 그는 7명의 단원과 함께 매일 밤 열리는 파티의 연주를 위해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 타이타닉호에 오르기 전, 하틀리는 약혼녀로부터 바이올린을 선물받았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약속했다. 어떤 순간에도 바이올린을 간직하겠다고. 그에게 있어서는 약혼녀의 사랑이 담긴 최고의 바이올린이었기 때문이다.


배가 서서히 침몰해가자, 하틀리는 죽음이 엄습해오는 그 혼란함 속에서도 단원들을 설득해 연주를 했다고 한다. 승객들은 아름다운 선율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성을 되찾게 되었고, 질서정연하게 구명보트를 타고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을 포기한 승객들은 하틀리가 이끄는 선상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죽음을 준비했다. 그들의 연주는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사고 이후 발견된 하틀리의 시신에는 약혼녀가 선물한 바이올린이 묶여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약혼녀를 생각하며 “어떤 순간에도 간직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약혼녀는 하틀리의 바이올린을 간직하며 평생 그의 사랑과 희생을 그리며 혼자 살다가 사망했다.

약혼녀가 사망한 이후, 사라진 하틀리의 바이올린은 67년 후에야 영국의 한 주택 다락방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2013년 10월,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무려 90만 파운드, 한화로 약 15억 원에 낙찰되었다.

오래되고 낡은 모조품 바이올린이 1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올린에 담긴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랑과 승객들을 위한 하틀리의 희생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명품 바이올린보다 가치가 높은 바이올린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 언약 유월절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야 하는 이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새 언약 유월절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이유가 이와 같다.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바로 이 새 언약 유월절 진리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19, 26~28)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죄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주시려고 당신의 살과 피를 이어받도록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타이타닉호의 승객들을 위한 희생이 담긴 ‘하틀리의 바이올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소중하게 여기듯,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 오롯이 담겨 있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 유월절’의 가치를 가장 높게 여기며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참고자료>
1. ‘타이타닉’, 두산백과
2. ‘타이타닉의 침몰’,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7&contents_id=7803
3. ‘타이타틱호 탑승 월리스 헨리 하틀리 바이올린, 15억 낙찰’, TVDaily, 2015. 6. 7.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33645777919383002
4.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MBC, 2015. 6. 7

2015년 9월 24일 목요일

다른 신을 멸하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을 멸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는  특별한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언약 유월절입니다.

출 12:11~12절.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에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신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다른 모든 신들을 심판하시면
누구만 남겠습니까?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을 깨닫고 지키면, 우리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됩니다.

실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하 30:1절.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대하 31:1절. 이 모든 일(유월절)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신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히스기야 시대에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 주상, 아세라 목상 등 그동안 섬겨왔던 가증한 우상들을 다 멸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는 그들이 그대로 두었던
다른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킨 후에 다 멸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어느 시대든지 유월절을 깨닫고 지키면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신들이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생각의 차이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기 전 한때 콜롬비아 대학 총장으로 재직했었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을 무더기로 징계하려는 결재서류를 접했다
징계사유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잔디밭을 학생들이 함부로 보행하여 망가뜨렸다는 것이었다
총장은 잠시 결재를 미루고 실무자와 함께 현장 답사에 나섰다
현장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선명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표지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잔디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총장님" 총장님께서 보고 계시는데도 저 모양 아닙니까?
마땅히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실무자는 거 보라는 듯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총장은 묵묵히 현장을 목격하고 아닐세 어서 저 표지판을 치우고 그 자리에 길을
내어주게나 학교는 학생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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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는 총장과 실무자의 극심한 견해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실무자는 금지 표시의 권위의 마음을 썼고 총장은 대학의 존재 의의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죠.
금지사항이나 남발하는 권위주의는 자칫 시대역행적인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급류에서 배를 타고 갈 때는  물 흐름의 속도보다 빨리 노를 저어나가야만 급류의 힘을 제압하고 앞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배가 뒤집히지 않는 지혜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생활 속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살아온 우리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가는 동안 많은 의견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입장에서 생각하느냐의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이해와 사랑으로 연합한다면 그립고 보고픈 하늘나라 빨리 갈 수 있겠죠^^


2015년 9월 21일 월요일

가치~ (새언약 유월절)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도
관심을 갖지 않는 한
나와 상관 없는 줄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누군가 알려주거나
직접 경험에 보면
그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엘로힘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구원의 표 '새언약 유월절'
그 진리의 가치도 그러합니다..
 
                                                                                             - 생각찬글 -
 

 

마음을 바꾼 다면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여인이 마당에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씨를 심었다.
이윽고 봄이 되자 정원은 여러 종류의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다. 그런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정원에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기 시작했다.
 
여인은 화훼 전문가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민들레를 없애버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민들레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여인은 이웃 도시에 있는 가장 유명한 정원사를 찾아갔다.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로운 정원사는 여러 가지 처방을 일러주었지만, 그것은 여인이 이미 시도해 본 방법들이었다.
 
한참 동안 여인과 정원사는 민들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드디어 정원사가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부인께서 민들레를 사랑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 좋은 글 꾸러미 중 ---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나는 '하피모'를 고발한다.

'하피모'를 알고 계신가요?

'하피모'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의교회 피해자 모임'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자신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교회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자들이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패스티브닷컴에 올라온 하피모 전 대표의 양심고백 내용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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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서울 영등포역 대회의실에서 하피모 공동대표였던 이태경 씨가 양심선언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오후 3시 30분경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등장한 이 씨는 회견장을 메운 기자들 앞에서 또박또박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갔다.

이 씨는 먼저 기자회견을 연 이유에 대해 “지난 1년여 동안의 하피모 활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특정교단을 의도적으로 피해 주기 위한 자극적 소란 시위로서, 정당치 않고 어리석기까지 한 음해성 비방행위였음을 늦게나마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지난 7월 29일 네이버의 하피모 카페에 <하피모 탈퇴선언 및 양심선언>을 공개하고, 8월 3일 네이버의 제 블로그에 <2차 양심선언>도 공개했다”며 “그러나 하피모 측은 양심선언 내용과 증거가 명백함에도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 하기보다 수위를 높여가면서 저를 계속 폄하하고 왜곡하였고 진실을 감추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에 사회와 교계에 하피모의 정체를 밝히고 진실을 바로 알리고자 이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씨가 밝힌 하피모의 문제점들을 간추린 것이다.

첫 번째, 자신은 물론이고 하피모의 다른 회원들도 하나님의교회로부터 어떠한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으며 피해를 입었다고 할 객관적 근거는 없다.

두 번째, 하피모 주동자들은 하나님의교회를 사이비 종교로 몰아가면 손해배상과 헌금 반환 등의 집단소송을 통해 개인당 최소 1억 원 이상의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목적이 이러다 보니 하피모 회원들은 사회적 이목을 끌기에 좋은 사이비 종교 피해자를 자칭하게 되었으나 그것은 어떤 특별한 근거가 있어서는 아니다.

세 번째, 실제적인 피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만연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려면 자극적이고 동시다발적인 1인 시위가 필요했다. 시위는 치밀한 각본에 따라 무직자들에게 수백만 원의 월급이나 수십만 원의 일당을 주어 고용하거나 8~10만 원의 용역 또는 알바를 고용하여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것처럼 꾸몄다.

................ 이하 생략

이 씨는 “그동안 실제 피해자도 아니면서 피해자 대표로 활동하며, 오로지 비방 자체를 위한 비방활동에 몰두한 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하나님의교회와 교인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들과 시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한편, 끝으로 “하피모 활동이 결코 옳지 못했음을 여러분 앞에 밝히고 용서를 구한다”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조직의 구성원이 조직 내 부정부패와 비리 등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행위를 일컫는 ‘휘슬블로잉(whistle blowing)’. 하피모 전 공동대표 이 씨의 휘슬블로잉은 하피모의 존립에 치명타를 가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어 경고하며 악행을 중지시키듯 이 씨가 충고한 대로 하피모 회원들이 이제부터라도 편견과 증오를 버리고 악행을 멈추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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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 아시겠죠?
진실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2015년 9월 17일 목요일

다윗의뿌리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다윗의뿌리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새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셨다.

새언약 유월절 진리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영생에 이른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아무리 능력있고 학식이 높다해도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 외에는 줄 수 없다.


지금 이 시대에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은
영생의 말씀을 따르던 제자들처럼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자들이다.

다윗의뿌리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하나님이신 안상홍님께서 지키라 하신대로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생명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생명을 얻는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25)

그렇다면 생명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요한복음 6:53~58)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다윗의뿌리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영생의 말씀은 바로 유월절 새 언약이다.

그러나 생명의 약속을 주셨을 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다.

오직 제자들만 영생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다.

다윗의뿌리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요한복음 6:66~69)

다윗의뿌리 안상홍님의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다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신 영생의 말씀, 새 언약 유월절을 듣지 않는 자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영생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생명을 얻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하나님 의 교회 성도들은 안상홍님을 믿고 있으며 안상홍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상홍님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그러나 2000년 전에도 여호와하나님을 고집하려는 부류가 대다수였으며 예수님의 이름이 당시에는 획기적인 새이름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라는 획기적인 새이름과 이 시대 새이름 안상홍님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사52] 하시며 구원자의 이름을 아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사도바울 역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주여 주여’ 하기 보다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현시대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명확히 알고 부르는 것은 기본적인 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우리의 생각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순종할 때, 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마지막 말씀에 이와 같은 당부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을 부탁하시며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3가지 이름이 있음을 넌지시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대마다 등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므로 차근차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입장으로 오셨을 때 그 이름은 여호와였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사64]
또한 하나님께서 아들의 입장으로 오셨을 때 그 이름은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이셨습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막 1 ]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 이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성령의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시대로 구원의 복음이 모두 종결되지 않는다는 확실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이후 등장하게 될 성령시대 구원자의 성호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성령의 이름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께서 필요 없는 성령의 이름을 언급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혹자는 ‘성령의 이름이 성령이 아니냐?’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름이 대통령이 될 수 없고 선생님의 이름이 선생님이 될 수 없듯이 성령의 이름이 성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직함과 개인의 이름은 별개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에는  예수님 이후 등장하게 될 성령이 이름이 있는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오직 예수님’만을 외치며 지나간 시대에 정체되어 있는 현실에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시대가 도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고집하여 시대에 역행하는 것과 동일하다 볼 수 있습니다. 구약안에 예수님의 증거가 있었듯 신약성경 안에 성령시대 역사가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생가해야 하겠습니다.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기에 구원의 시대에 따라, 시대에 맞는 구원자의 이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다른 구원자의 이름을 설정해 두시고, 시대에 따라 임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깨닫는 자녀에게 축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시대에 따른 구원자의 성호를 구약의 역사부터 살펴보면
[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3] 하시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단정지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구원자의 성호가 결단코 등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말씀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 베드로가 여호와가 구원자라는 내용을 보지 못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입니다.
한 번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라 칭하고 있으며 또 한 번은 예수님만이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에서 우리는 여호와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서 과연 누구를 의지하고 따라야 하겠습니까?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두 구절을 살펴본다면 성경은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것은 시대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 분의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오셔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셨을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는 자신의  고정관념과 아집을 내세웠던 종교지도자와 달리 성경을 기준으로 예수님을 믿었던 소수의 자들이 구원을 받았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날 예수라는 이름이 현재에는 익숙할 지라도 그 당시 예수님의 이름은 획기적인 새이름 이었기에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들이 양분되었던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보편적인 상식을 우선시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주장하며 익숙한 내용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의뿌리로 오신 새이름 안상홍님


2000년전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새언약 복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방황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9:28]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확실한 예언 속에 그리스도께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이름으로 오셔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이름(new name)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 영적인 귀가 열려있어 자신의 상식보다는 말씀을 기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성령시대 예수님의 새로운 이름을 알게 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 서두에 이는 예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면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록한 내용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했습니다.
안식일과 유월절 등의 진리가 훼파된 현실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예언이 있으며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아닌 새로운 이름으로 오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암행으로 오시기 위해 새이름으로 임하신 안상홍님이 왜 재림그리스도인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